백결선생은 신라 전기의 거문고 명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영해 박씨 족보에 따르면 눌지 마립간대의 문신 박제상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다른 이름은 문량이라고도 합니다.
백결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백 번을 기도했다는 뜻으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나타낸 것이라는 설 백 번을 맺었다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과 음악을 통해 교류했다는 설 백 가지 곡조를 연주했다는 뜻으로, 뛰어난 음악 실력을 나타낸 것이라는 설 등이 있습니다.
백결선생은 거문고를 타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표현했다고 합니다. 또한, 새끼 띠를 매고 금을 타며 노래를 부르며 다녔다는 일화도 전해져 있습니다.
백결선생의 음악은 후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뛰어난 음악 실력과 열정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있습니다.
백결선생의 생몰년은 아쉽게도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삼국사기에는 백결선생의 가문이나 생애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영해 박씨 족보에 따르면 백결선생은 눌지 마립간 13년(서기 414년)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영해 박씨 족보의 신빙성에 대한 논란이 있어 정확한 정보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삼국사기 잡지에 따르면 백결선생은 자비 마립간(재위 458년~479년) 때 활동했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백결선생은 414년 이전에 태어나 479년 이후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백결선생의 생몰년에 대한 더 정확한 정보는 현재까지 발견된 자료로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자료가 발굴되면 백결선생의 생몰년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밝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백결선생과 아내의 이야기
백결선생은 몹시 가난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습니다. 백결선생과 그의 아내는 항상 궁핍하게 살았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어느 해 섣달밤, 다른 집들에서는 떡방아 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이하는 반면, 백결선생네 집에서는 쌀 한 톨 없이 새해를 맞이해야 했습니다. 슬픔에 잠긴 아내는 백결선생에게 말했습니다.
"저희도 다른 사람들처럼 떡을 만들어 먹을 수는 없을까요?"
백결선생은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거문고를 잡고 아름다운 곡조를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碓臼(적우)로 찧는 소리 들려오네, 새해맞이 떡갈이데 잴 소리 들려오네.
하지만 우리도 슬퍼하지 말자, 새해맞이 즐거움은 마음속에 있다네.
백결선생의 아름다운 노래와 진심 어린 위로에 아내는 마음의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서로 굳게 손을 잡고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백결선생의 음악적 재능뿐만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그의 긍정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야기입니다. 또한, 아내와의 간절한 사랑과 존경심을 표현한 이야기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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